어느 초여름 들판 한가운데..
자그마한 물웅덩이에서 갸냘픈 몸매로 풀잠자리 한마리 태어났다.

해거름한 오후..
한낮에 불타는 듯 하던 태양이 조금 숙질 때면
학교 수업 마친 어린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온통 풀밭을 물가를 헤집고 다녀도
그 누구도 흔하디 흔하고 보잘 것없는 풀잠자리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가져주지 않았다.

되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성질 더러운 물방개는 인기도 좋았고..
맨날 맨날 여린 나뭇가지에 붙어서 사는 진딧물이만 맛있어 해서
노린내 꼴꼴 풍기는 무당벌레는 이쁘고 신기해 하면서도..
아이들은 아무도 풀잠자리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런 사실이 갓 태어난 풀잠자리에게는 매우 슬프고 외로웠다.
게다가 크고 멋있는 몸매를 뽐내며 마치 최신형 헬리콥터처럼 윙윙거리며
연못 주변을 날고 있는 왕잠자리의 커다란 몸집과 위용 앞에서
풀잠자리의 초라하고 남루함은 하염없이 주눅만 들어 갔다.

궁리 끝에 풀잠자리는 모두들 잠든 밤을 틈타서
자신이 아이들을 찾아 가리라 마음 먹었다.
왕잠자리도 없고.. 물방개도 없고.. 무당벌레도 없으면..
그래서 눈에 띄는 거라고는 풀잠자리 자신 밖에 없다면..
하는 수없이 아이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믿었다.

게다가 자연과는 먼 곳의 있을 도시의 아이들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아주 신기해하고 예뻐해주리라는 말을
멀리 도회지를 다녀온 적이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 씩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미리 약속을 해두었던 몇 몇 친구들과 함께
멀고 먼 곳에 있을 도시를 향해 힘껏 날개짓을 하며 길을 떠났다.

산골 오솔길도 지나고..
고속도로도 가로질러 그저 어딘가에 있을 도심의 불 빛을 찾아서
열심히 날으고 또 날았다.
날개죽지가 찢어지고 끊어질 듯 아파왔지만
그래도 죽도록 외로운 것 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지고 이를 악물면서 있는 힘을 다해 날았다.

같이 떠났던 친구들은 이미 여럿 보이지를 않았다.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 빛에 눈이 부셔서
한순간 갈피를 못잡고 수없이 앞 유리랑 범퍼에 부딪치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지치고 갸냘픈 몸이 산산히 부서져 공중으로 흩어져 갔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제는 돌아 갈 길마저 아득히 잃어버린 채..
풀잠자리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는 부지런히 날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듯..
풀잠자리는 도시외곽에 자리잡은 새로 들어선 듯한
아파트 단지 하나를 발견하고는 너무나 가슴이 설레이고 기뻐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지도 금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불 빛이 새어 나오는 창(窓)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러나 한치의 빈틈도 없이 겹겹히 둘러쌓인 방충망 때문에
차갑고 단단한 유리창 건너 저편에 보이는 아이들에겐
도저히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크게 낙담을 한 풀잠자리는..
혹시나 싶어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아파트 길 건너 커다란 오동나무 밑에 자리잡은
노천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는
행여나 하는 생각에 잽싸게 그 곳으로 날아가 보았다.

넓직한 평상마루에는 오순도순 모여 앉아
조금 늦은 듯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두 세 가족들과
몇 몇 어린 아이들이  눈에 띄였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풀잠자리가 아이들 곁으로 날아가려 하자
갑자기 한 여자 아이가 놀란 듯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왕모기야.. 왕모기..."

풀잠자리가 얼핏 돌아 본 곳에서는
천정에 매달려 파아란 불빛을 뿜어대는 이상한 열기구에서
정말 왕모기랑 비슷하게 생긴 풀잠자리의 친구들이
뿌지직.. 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 타는 듯한 냄새를 풍기며 죽어가고 있었다.

 

풀잠자리의 슬픔(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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