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가 어떻다’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배우자가 용건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귀찮아한다면 딱 용건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간

섭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내버려두면 되고요. 

반대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어도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거예요. 
 
질문에 굳이 답을 한다면 상대에게 맞추면 됩니다. 

사람마다 각각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하면 돼요. 그런데 내가 맞추기가 좀 어렵죠. 

사람은 다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고집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향, 자기 성질, 자기 취향을 자꾸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맞추기가 어려운 거예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맞추려면 상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다 자기 식대로만 생각하니까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죠. 
 
사랑하는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거든요. 

상대가 어떤 성질인지, 뭘 원하는지를 살펴서 거기에 맞춰주면 특별히 문제가 없어요. 

처음부터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살아보면서 맞추는 것이지요. 
 
같이 길을 갈 때 내가 조금 빨리 가면 상대가 ‘뭘 그리 급하다고 빨리 가느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면 ‘그렇게 천천히 가면 언제 가느냐?’ 또 이렇게 아이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람, 성질이 뭐 이래? 조금 빨리 가면 빨리 간다고 그러고,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간다고 그러고,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러기가 쉽습니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고, 

또 느리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적절하게 맞아집니다. 그렇게 적절히 맞아지는 것을 불교용어로 중도(中道)라고 해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딱 정확하게 맞는 거예요. 

현실 속에서는 아주 정확하게는 안 되지만, 

약간 넘쳤다가 모자랐다가를 반복하며 몇 번 조율하다 보면 비교적 과녁에 맞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렇게 잘 안 맞추지요?”
 
“예, 그러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그게 왜 힘들어요? ‘조금 느리게 간다’ 그러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 그러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는데요. 

질문자는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라는 마음이니까 안 맞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하고 안 맞는지, 뭐가 안 맞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봐요.” 
 
“조직사회에서 제일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게 대화의 단절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전혀 수용하지도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 그런 대화의 단절이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중에는 자기의 속을 드러내놓고 대화하는 사람도 있고,

‘내 이야기를 해 봤자 세상 사람 누구도 나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 해서 용건만 이야기하고 마음의 문을 안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네가 마음의 문을 안 연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가 마음의 문을 안 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안 여는 사람은 안 여는 대로, 여는 사람은 여는 대로, 그냥 거기에 맞추면 됩니다. 
 

예를 들어 ‘강연은 어떻게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강연하는 사람이 복잡해지지요. 

그런데 저는 강연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묻는 대로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보통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준비를 하잖습니까. 저는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뭘 물을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둘째,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하면서 해본 가장 짧은 답은 ‘모른다’입니다. (청중 웃음) 
  
모를 때 모른다는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 긴장이 되고 노력이 많이 드는 거예요. 

모르면 그냥 ‘제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고, 다음에 설명해 줘도 되는 사람이면

‘제가 다른 데 가서 물어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틀리면 ‘틀렸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상대의 필요에 따라서 응하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이런 겁니다.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강릉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는데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강릉 사람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해야죠. 이렇게 인연에 따라서 대응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원칙은 없고, 인연에 따라서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며 ‘1원칙, 2원칙, 3원칙, 4원칙’을 정하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 보고 ‘어른한테 인사 안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사는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겁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인사를 하면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안 하면서 아이한테 ‘임마, 왜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해?’라고 야단치잖아요. 

그렇게 억지로 하는 인사는 생활화가 안 돼요. 아이한테 먼저 인사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면 됩니다. 

내가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인사를 안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인사라는 것은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반가우면 ‘반갑습니다’하면 됩니다. 상대가 말하기 싫으면 그냥 지나갈 것이고, 받을 사람은 받을 거예요.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라며 계산적으로 생각하니까 자꾸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그냥 자기 편할 대로 하면 됩니다. 

‘안녕?’ 이러고 그냥 들어가면 되고, 학생이 물으면 대답해 주면 되고, 말 안 하면 놔두면 돼요. 

그걸 내가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소통이 안 된다’, ‘너는 말이 없다’,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 

‘너는 왜 말을 안 듣니?’ 자꾸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그냥 학생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고, 꼭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고, 학생들이 질문자의 업무 중에 와서 묻더라도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시간이 없으면 ‘지금은 업무시간이니까 이따 휴식시간에 보자’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인연에 따라서 대응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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